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팀. 보고서는 완벽하고, 절차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연말이 되면 정작 중요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열심히 했다’는 공허한 만족감만 남는다. 당신의 조직도 이런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영리한 무능’이라는 함정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영리한 무능’이란, 똑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지성을 결과 창출이 아닌, 책임을 회피하고 내부 절차를 통과하는 데 사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조직을 서서히 마비시키는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 비극의 시작: 리더의 ‘잘못된 번역’

이 비극은 대부분 최고 리더의 좋은 비전이 중간 리더를 거치며 왜곡되는 ‘말 전달하기 게임’에서 시작된다. CEO가 ‘고객 중심의 문화를 만들자!’라는 ‘목표(Why)’를 외쳤다고 가정해보자. 이 비전이 중간 리더에게 전달되는 순간, 그의 ‘판단 오류’가 개입한다. 그는 이 추상적인 비전을 ‘고객 불만 건수 0건’이라는 측정 가능한 ‘실행(How)’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팀에게 지시한다. “모든 불만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환불해 줘서 없애버려!”

결국 팀원들은 고객의 목소리에서 혁신의 기회를 찾는 대신, 환불로 문제를 ‘덮는’ 데 영리해진다. 비전은 사라지고, 왜곡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계적인 업무만 남는다. 혁신을 외치자 강제적인 아이디어 회의가 생기고, 권한 위임을 말하자 무책임한 방임이 시작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 나는 어떤 리더인가: 자기 성찰의 시간

만약 당신이 리더라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팀원들에게 일의 '결과'가 아닌, 보고서의 '형식'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상부의 비전을 나의 관리 편의를 위해 단순하고 왜곡된 지시로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팀원들이 ‘왜(Why)’를 고민하게 하는가, 아니면 그저 ‘어떻게(How)’만 따르라고 강요하는가?

쓸데없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리더는 팀원들에게 ‘영리한 무능’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빙산을 향해 가는 배 위에서 선원들에게 갑판 청소만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는 선장과 다를 바 없다.

♠ ‘영리한 유능’을 향하여

결국 해결책은 ‘영리한 유능’을 추구하는 리더십에 있다. 진정한 리더는 비전의 ‘번역가’로서, 그 핵심 가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이다. 절차를 위한 절차를 걷어내고, 팀원들의 지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 해결에 집중되도록 환경을 만든다.

당신이 리더이든 팀원이든, 끊임없이 “우리는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우리의 조직은 ‘영리하게 무능한’집단이 아닌, ‘영리하게 유능한’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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