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봉초등학교 총동문회 김명곤 회장.
▴서울도봉초등학교 총동문회 김명곤 회장.

서울의 북쪽 끝자락, 도봉산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도봉1동에는 ‘근심이 없는 골짜기’라 불리는 무수골(無愁洞)이 있다. 이곳에는 60여 년의 세월 동안 마을의 등불이 되어온 도봉초등학교가 있고, 또 그 가운데 무수골 역사의 산증인이자 든든한 버팀목인 김명곤(도봉초 10회) 총동문회장이 있다. 혹자는 동문회를 그저 ‘과거를 추억하는 모임’이라 말한다. 하지만 김명곤 회장이 이끄는 도봉초 총동문회는 다르다. 무수골 계곡을 청소하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친목 단체를 넘어 동문과 모교재학생을 아우르는‘지역사회 공동체’의 표본을 보여준다. 도봉초등학교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의 재탄생을 위해 잠시 교정을 떠나 있는 2025년 늦가을, 옛 도봉고등학교 임시 교사에서 김명곤 회장을 만났다. 화려한 감투보다는 솔선수범하는 흙 묻은 운동화가 더 잘 어울리는 이 ‘도봉초 큰형님’에게서 도봉초 동문회의 저력과 남다른 후배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무수골의 아이, 동문의 리더가 되다

Q. 회장님, 반갑습니다. 도봉구, 특히 이 도봉초 일대에서 회장님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웃음) 도봉초등학교와는 어떤 인연이신지요.

“반갑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이 무수골 흙을 밟고 자란 도봉초 10회 졸업생일 뿐입니다. 우리 때는 학교가 곧 놀이터였고, 마을 전체가 학교였습니다. 무수골 개울가에서 가재 잡고 잠자리 쫓던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동네를 지키고 있으니, 학교 구석구석 추억이 있는 곳 입니다. 제가 총동문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도 어쩌면 그 시절 학교와 마을 어르신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으라는 뜻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Q. 최근 도봉초 총동문회의 활동을 보면, 일반적인 초등학교 동문회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열린 체육대회에는 600명이 넘게 모였다고요.

“지난 2024년 10월이었죠. 제18회 한마음체육대회를 진행했는데, 지역 내⋅외빈들과 동문, 주민들까지 600여 명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동문회가 이렇게 활성화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도봉초에는 1회 선배님부터 갓 졸업한 청년 동문까지를 아우르는 끈끈한 ‘정(情)’이 있습니다. 단순히 모여 웃고 술 한잔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환갑을 맞은 12회 후배들을 위해 떡 케이크를 자르고, 칠순을 맞은 3회 선배님들을 위해 후배들이 부채춤 공연을 하는, 그야말로 ‘마을 잔치’이자 ‘가족 모임’이지요. 그날 선후배들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과 가슴이 뜨거워지던군요."

■ ‘재미있는 동문회, 함께하는 동문회’

Q. 회장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슬로건이 ‘재미있는 동문회, 함께하는 동문회’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철학이 담겨 있습니까?

“동문회 나온다고 하면 ‘돈 내라고 부르는 거 아니냐’며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 문턱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와서 보니 선배들이 반겨주고, 후배들이 함께하는 ‘재미’가 있어야죠. 그리고 기수끼리만 노는 게 아니라 전 기수가 ‘함께’ 어우러져야 생명력이 깁니다. 제가 회장이 되고 나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소통입니다. 1년에 한 번 만나는 게 아니라, 봄에는 바자회로, 가을에는 체육대회로, 또 수시로 무수골 청소 봉사로 얼굴을 맞대니 자연스레 결속력이 생깁니다. 즐거워야 모이고, 모여야 힘이 생깁니다. 그 힘은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고요.”

Q. 말씀하신 대로 그 ‘힘’이 후배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졸업생 전원 장학금 지급’ 학기마다 장학생 선발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사례 아닌가요?

“맞습니다. 보통 장학금이라고 하면 공부 잘하는 몇 명, 혹은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운 몇 명에게만 주지 않습니까? 우리는 발상을 바꿨습니다. ‘도봉초를 졸업하는 아이들 모두가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생각으로 졸업생 전원에게 (배정철 동문)장학금을 지급합니다.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졸업식 날 선배들이 주는 장학증서를 받으면 아이들 자존감이 얼마나 높아지겠습니까. ‘아, 내 뒤에는 든든한 선배들이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매월 13명의 꿈나무 장학생에게 1인 1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이 재원은 동문들이 매월 ‘천원의 행복’에 참여하고 1%의 사랑 저금통에 함께하는 지역 업체들과 매년 봄에 여는 ‘한마음 바자회’ 수익금 전액을 모아 마련합니다. 우리 동문들이 땀 흘려 번 돈으로 후배들 기를 살려주는 것, 미래를 위해 배움을 주는 것. 그게 바로 선배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 전통과 미래의 옷을 입히는 선배

Q. 장학금뿐만 아니라 ‘전통의 국악 풍물반 지원’ 사업과 ‘단체복 지원’도 하신다고요. 정말 부모 같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요즘 맞벌이 가정이 많다 보니 방과 후 교육에 소외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학교 측과 협의해서 풍사랑 풍물반 활동을 판소리 보존회 회장이신 우정문 선생님을 초빙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매년 학년별로 학생들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단체복도 맞춰줍니다. 아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현장학습을 가거나 체육활동을 할 때 소외감 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도봉초가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있지만, 예산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빈틈을 우리 총동문회가 메워주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든든한 동문회, 든든한 선배가 되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웃음)

Q.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만 하시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직접 만나고 대화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꿈나무 장학생과의 만남’은 어떤 행사인가요?

“김계선 장학위원장, 장학위원들과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어린 학생들이지만 소중한 우리 후배들에게 장학금만 계좌로 전해주고 끝내는 것은 의미가 작다고 생각했어요. 상반기에는 장학생으로 선발된 아이들과 함께 우리 학교 뒤편 무수골 둘레길을 걷고 쓰레기를 줍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숲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고민도 들어보고, ‘너희가 자라서 이 마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격려도 해줍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내려올 때는 ‘할아버지, 선배님’ 하면서 팔짱을 낍니다. 하반기에는 꿈나무 장학생과 가족을 초대해 자연안에서 쉼과 휴식을 위하고, 대화 속에서 성장과정을 보며 가족의 소중함과 수고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도봉초 동문의 살아있는 교육이죠.”

■ 무수골의 자연이 곧 아이들의 미래

Q. 회장님과 동문회는 ‘무수골 환경 지킴이’로도 유명합니다. 매년 새봄맞이 대청소를 하신다고요.

“도봉초등학교가 위치한 무수골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청정 지역입니다. 학교 교가가 도봉산의 정기를 받는다는 내용 아닙니까. 그런데 등산객이 늘어나면서 쓰레기 문제도 생기더군요. 우리 아이들이 뛰노는 터전이 더러워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매년 봄이면 동문들이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옵니다. 학교 주변부터 무수천, 도봉산 둘레길까지 샅샅이 청소합니다.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라, 내 고향 내 학교를 닦는 마음이지요. 주민들도 처음에는 ‘행사치레겠지’ 하다가 매년 꾸준히 하니까 이제는 ‘역시 도봉초 동문회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십니다.”

■ 위기를 기회로, 100년을 향한 약속

Q. 현재 도봉초등학교가 개축 공사 때문에 옛 도봉고등학교 자리로 임시 이전을 한 상태입니다. 어수선할 수도 있는데 동문회 차원에서는 어떻게 돕고 계신지요.

“맞습니다. 지금 학교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 거듭나기 위해 개축공사 중입니다. 3년 정도 도봉고 자리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죠. 학부모님들 걱정도 많으셨고요. 이럴 때일수록 동문회가 중심을 잡아줘야 합니다. 이준규 교장선생님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아이들 통학 안전이나 학습 환경에 부족함이 없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바자회도 임시 교사인 도봉고 운동장에서 열었습니다. ‘학교가 어디에 있든 동문들의 사랑은 변함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오히려 이 기간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3년 뒤 최첨단 시설을 갖춘 모교로 돌아갈 때는 동문회가 더 큰 선물을 안겨줄 생각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도봉초등학교 동문들과 지역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도봉초등학교는 단순한 모교가 아니라, 제 인생의 뿌리이자 마음의 고향입니다. 우리 동문 2만6천여 명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저 후배들이 ‘나도 커서 저런 멋진 선배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도봉초가 있어 우리 동네가 참 좋다’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내년 봄이 오면 우리는 또 무수골 도봉초 동네를 청소하고 바자회를 열겁니다. 이 평범하지만 위대한 전통의 초석을 놓으신 선배님들의 뜻을 이어 100년, 200년 이어지도록 디딤돌을 놓는 것이 제 마지막 소임입니다. 우리 마을이 진정으로 근심 없는 ‘무수(無愁)’의 낙원이 될 때까지 함께 걸어갑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김명곤 회장은 기자에게 “무수골 단풍이 참 곱지요”하며 웃어 보였다. 그의 거친 손마디에서 도봉 60년 세월을 지켜온 뚝심과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학교가 사라지고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는 시대, 도봉초등학교 총동문회는 ‘학교가 마을을 살리고, 마을이 학교를 키우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묵묵히, 그러나 뜨겁게 고향을 지키는 ‘영원한 도봉인’ 김명곤 회장이 있었다. 그의 바람대로 도봉초등학교가 무수골의 영원한 자랑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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