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4일(월) 오전 10시 30분, 도봉구 방학동 방학사계광장.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광장을 가득 메운 1천여 명의 도봉구민들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서울 동북권 주민들의 최대 숙원 사업이자, ‘교통 오지’라는 오명을 벗겨줄 구원투수, ‘우이-방학 경전철(우이신설선 연장선)’이 마침내 첫 삽을 뜨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기공식 현장은 차분하면서도 비장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 ‘교통 섬’에 갇혔던 도봉, 15년의 인내와 기다림
우이-방학 경전철 사업의 착공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봉구 방학동과 쌍문동 일대가 겪어온 ‘교통 소외’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역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대표적인 대중교통 사각지대였다. 주민들이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을 이용하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20~30분을 이동해야 했고, 출퇴근 시간이면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매일같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북한산과 도봉산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끼고 있지만, 열악한 교통 여건은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족쇄가 되어왔다.
우이-방학선 사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서울시 도시철도 기본계획에 포함되며 처음 닻을 올렸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는 오래가지 않았다. 민자 사업자 선정 난항, 수요 예측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성(B/C) 미달’이라는 암초를 만나 10년 넘게 표류했다. 선거철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희망고문’의 대명사였다.
■ 오세훈 시장의 결단, ‘숫자’가 아닌 ‘사람’을 택하다
지지부진하던 사업에 반전의 드라마가 쓰인 것은 민선 8기가 출범하면서부터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더 이상 민간의 ‘수익성 논리’에 맡겨둘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 결국 서울시는 과감하게 전액 재정이 투입되는 ‘재정사업’으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경제성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주민들의 삶의 질과 균형 발전이라는 공익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약자와의 동행’ 시정 철학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날 기념사에 나선 오세훈 시장의 목소리에는 그간의 고뇌와 사업 완수에 대한 비장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오 시장은 “오늘, 15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이신설 연장선이 첫 삽을 뜨게 되었다”며, “이 노선은 제가 지난 2007년, ‘서울 도시철도 10개년 계획’을 통해 처음으로 강북권 교통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약속드렸던 사업”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재정 문제, 각종 심의, 계획 변경, 입찰 유찰까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다”며, “그만큼 주민 여러분의 불편과 기다림도 길어졌기에, 다시 한 번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진솔하게 사과해 주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오 시장은 이어 구체적인 변화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번 연장선이 개통되면 솔밭공원역에서 방학역까지, 지금은 버스로 25분, 승용차로 13분이 걸리지만, 앞으로는 단 8분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된다”며 “약 10만 명의 주민 여러분께서 도보 500m, 5분 생활권 내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실 수 있게 되어, 출퇴근길은 빨라지고 아이들의 통학길은 더 안전하고 편리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최호정 서울시의장 ‘의회가 든든한 뒷배 될 것’전폭 지원 약속
이날 행사에는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이 참석해 사업 추진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다.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시의회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호정 의장은 축사를 통해 “15년이라는 긴 세월, 도봉구민들께서 흘리신 땀과 눈물을 잘 알고 있다”며 “우이방학 경전철이 계획대로 2032년에 안전하게 개통될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는 예산 심의와 행정적 지원 등 필요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최 의장은 또한 “이 사업이 도봉구를 넘어 서울시 전체의 균형 발전을 견인하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집행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꼼꼼히 챙기겠다”고 덧붙여 참석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는 사업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든든한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 오언석 구청장 ‘도봉의 100년 미래, 이 철길 위에서 시작된다’
사업의 실무를 진두지휘해 온 오언석 도봉구청장의 축사는 ‘감사’와 ‘자신감’으로 요약되었다. 오 구청장은 자신을 낮추면서도 도봉의 미래에 대해서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냈다. 오 구청장은 “정치인들을 대신해 행정을 하는 구청장으로서, 그동안 사업이 지연된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이 크다”며 구민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어 오세훈 시장을 향해 “도봉구에 많은 선물을 주신 산타 시장님”이라고 지칭하며 감사를 표하고, 사업의 조기 착공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온 서울시 관계자들의 노고를 일일이 언급하며 공을 돌렸다.
그는 도봉구의 미래를 마라톤에 비유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금은 강남, 서초, 송파가 앞서가는 것 같지만, 마라톤 경기의 진정한 우승자는 마지막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라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강북 전성시대’를 넘어, 명실상부한 ‘도봉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우이방학 경전철을 시작으로 GTX-C 노선, 아레나 공연장, 창동 민자역사, 그리고 지하철 1·4·7호선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완성되면 도봉구는 문화·교통·경제의 중심지로 우뚝 설 것”이라며 “다른 어떤 자치구보다 잘 살고 발전하는 도봉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뛰겠다”고 다짐했다.
오 구청장의 연설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는 15년의 기다림 끝에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음을 확인한 구민들의 안도감과, 지역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반응이었다.
■ ‘솔밭공원역~방학역’ 3.93km… 강북 교통지도 다시 그린다
우이방학 경전철은 현재 운영 중인 우이신설선 ‘솔밭공원역’에서 시작해, 지하철 1호선 ‘방학역’까지 총연장 3.93km를 연결하는 노선이다. 총사업비 약 4,690억 원이 투입되며, 구간 내에 3개의 정거장이 신설된다. 이 노선의 파급력은 ‘연결‘에 있다. 그동안 단절되었던 우이신설선과 1호선이 직결됨으로써, 강북구 우이동에서 도봉구 방학동, 그리고 동대문구 신설동까지 서울 동북권을 ‘ㄷ’자 형태로 촘촘하게 연결하는 순환 철도망에 가까운 형태가 완성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이방학선이 개통되면 우이신설선 이용객들이 방학역에서 1호선으로 바로 환승할 수 있게 되어, 서울 도심(시청, 서울역)과 경기 북부(의정부, 양주)로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기존 버스 이용 대비 이동 시간이 최대 20분 이상 단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도봉구의 지형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신설되는 3개 정거장 주변은 새로운 역세권으로 거듭나며 상권 활성화와 주거 환경 개선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산 국립공원과 도봉산, 방학동의 역사문화 자원(전형필 가옥, 김수영 문학관 등)이 경전철 라인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외부 관광객 유입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 ‘턴키’ 공법으로 난공사 뚫는다 ‘안전이 최우선’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공사가 진행될 구간은 주택 밀집 지역과 도로 폭이 좁은 구간이 많아 난공사가 예상된다. 또한 2032년 준공까지 약 7년이라는 긴 공사 기간 동안 발생할 교통 체증과 소음, 분진 등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설계와 시공을 일괄 입찰하는 ‘턴키(Turn-key)’ 방식을 도입했다.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여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시공사 측은 “최신 저소음·저진동 굴착 공법을 도입하고, 스마트 건설 기술을 활용해 공기 단축과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또한 ‘스마트 안전 관제 시스템’을 도입해 24시간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주민 설명회를 정례화하여 민원을 선제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 이제는 ‘속도’와 ‘안전’으로 보답할 때
기공식 현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들에게 우이-방학 경전철은 단순한 철길이 아니라, 소외되었던 강북의 자존심을 세우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희망의 레일’이었다.
“살아생전에 우리 집 앞에 전철 들어오는 걸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한 80대 어르신의 젖은 목소리가 기자의 귓가에 맴돈다. 정치는, 그리고 행정은 바로 이런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할 때 가장 빛난다.
경제성이라는 차가운 숫자에 가로막혀 15년을 돌아왔지만, 이제야말로 ‘사람’과 ‘균형 발전’이라는 따뜻한 가치를 싣고 달릴 준비를 마쳤다. 서울시장, 시의회 의장, 도봉구청장이 한자리에 모여 보여준 강력한 추진 의지는 이 사업의 성공을 예감케 하는 긍정적인 신호다.
오세훈 시장이 약속한 대로 ‘정거장과 환기구 통합’, ‘배리어 프리’, ‘패스트트랙 공법’ 등이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는지, 그리고 오언석 구청장이 다짐한 대로 주민 불편이 최소화되는지, 언론과 시민사회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강북의 지도를 바꿀 역사적인 공사가,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순항하여 2032년 도봉구의 아침을 힘차게 여는 ‘명품 철도’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30만 도봉구민의 꿈을 실은 열차는 이제 막 출발했다. 김형순 기자 ks00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