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토) 오전 10시, 우이동 만남의 광장은 북한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이 내뿜는 거친 함성으로 가득 찼다. 국립공원공단(이하. 공단)이 추진하는 ‘암벽등반 신고제’ 도입에 반대하는 ‘국립공원 등산허가제 대책협의회’ 주최의 결의대회가 열린 것이다. 인수봉, 선인봉 등 북한산의 주요 암벽에 대한 이용을 사실상 허가제로 만들려는 시도라며, 산악계는 공단의 정책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는 단순한 정책 갈등을 넘어, 국가가 자연을 ‘관리’하는 방식과 시민이 자연을 ‘향유’할 권리 사이의 오랜 철학적 대립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 공단의 논리: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공단의 입장은 ‘안전’이라는 대원칙에 기반한다. 암벽등반 인구가 급증하며 안전사고의 위험 또한 커졌다는 것. 공단이 도입하려는 ‘암벽 이용 시스템’은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하고, 이용 당일 자격과 장비를 확인받는 절차를 골자로 한다. 공단 측은 이를 통해 최소한의 안전장비와 기술을 갖춘 이들이 등반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눈길에 스노타이어가 필요하듯, 암벽을 오르려면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비유처럼, 이는 금지가 아닌 안전한 등반 문화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 공단의 일관된 주장이다.
◆ 산악계의 반박: ‘행정 편의’에 가려진 통제와 불신
하지만 산악계는 공단의 주장을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 일축한다. 이들의 반발은 깊은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인수산장 및 북한산장 철거 등 공단이 보여준 일방적인 행정 선례는 이번 신고제 역시 소통 없는 통제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산악인들은 ‘신고제’라는 명칭과 달리 다양한 취소 옵션과 제한 규정이 포함된 이 시스템이 사실상의 ‘허가제’이며, 자연공원법 어디에도 등반 행위 자체를 승인 대상으로 삼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사고 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각서 요구 등은 결국 공단이 안전에 대한 책임을 산악인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 새로운 제안: 100년의 역사를 ‘유네스코 유산’으로
이번 결의대회에서 주목할 점은 산악계가 단순한 반대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바로 1920년대부터 이어져 온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의 암벽등반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암벽등반을 단순한 레저 활동이 아닌, 약 100년간 선후배 산악인들을 통해 계승되어 온 고유의 기술과 등반 윤리, 자연 존중 사상을 담은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산악계는 스위스의 고산 목축문화나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등반 문화가 인류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정받았듯, 인수봉과 선인봉의 등반 문화 역시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 “신뢰 없는 정책, 소통으로 풀어야”
이번 결의대회를 이끈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산악계의 입장을 상세히 밝혔다. 그는 먼저 깊은 불신을 지적했다. “과거 국립공원공단이 자행해온 일방적인 북한산 산장 철거를 비롯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피니즘’이라는 산악문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단에 대해 산악계의 불신이 큰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신고제는 소통의지가 없는 통제 정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변기태 회장은 신고제의 법적, 절차적 문제점도 짚었다. “신고제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온라인 예약 실패나 당일 거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사실상의 허가제나 다름없다. 암벽등반 행위를 비롯한 과도한 입산 통제는 자연공원법과 국립공원공단법이 정한 국립공원 내 금지행위나 공단의 위임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월권행위다. 진정으로 등반객 안전과 통계가 필요하다면, 통제와 허가가 아닌 산악인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데이터 수집 방식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 결론: 상생의 길을 향한 진정한 소통을 기대하며
13일의 함성은 하나의 끝이 아닌, 새로운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공단은 통계 수집 방식의 시스템 전환과 폐쇄된 암벽의 단계적 개방 등 산악계의 요구를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산악계 또한 안전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안전’이라는 명분과 ‘자유’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북한산의 암벽 위에서, 양측이 과연 해묵은 불신을 딛고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