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선동 위원장에게‘도봉의 내일’을 묻다!
정치는 때로 길고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지만 어떤 정치인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변화를 위한 집요한 준비의 시간으로 바꾼다. 20여 년 넘게 도봉구에 뿌리내리고, 재선 국회의원과 당 사무총장, 여의도연구원장 등 중앙정치의 핵심을 거친 김선동 국민의힘 도봉을 당협위원장이 바로 그런 정치인이다. 그가 그리는 도봉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 다시 도봉에서, 열정으로 올인하다
김선동 위원장이 도봉으로 돌아왔다. 당 사무총장, 여의도연구원장, 두 번의 서울시당위원장 등 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지역에 집중하는 모드다.
“정치인이 가장 빛나야 할 곳은 여의도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이 있는 바로 이곳, 도봉입니다. 40여년 가까이 도봉에 살면서 아이들을 낳아 길렀고, 이곳에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두 번의 당선과 세 번의 낙선을 했지만 아직도 저 김선동은 오직 도봉뿐입니다. 도봉은 제 정치의 뿌리이자, 제 삶의 터전이며, 제가 뼈를 묻을 곳이기 때문입니다.”
김선동 위원장의 말처럼 대선 이후, 그의 행보는 오직 ‘도봉 발전’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올인하는, 오롯이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원외 당협위원장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구청장과 서울시장 그리고 중앙정부와 ‘원팀’이 되어 도봉의 숙원 사업들을 해결해 나가는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그런 그의 열정적인 모습은 자칫 ‘정치 심판’이라는 거대 담론에 가려지기 쉬운 지역발전의 중요성을 주민들에게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일’그리고‘결과’로 말하는 정치
“도봉구는 아직도 큰 잠재력을 가진 기회의 땅입니다. 세계적인 명산 도봉산을 가지고 있는 국립공원이면서도 단 1대의 관광버스도 주차 시킬 공간이 없는 것이 오늘날 도봉의 현주소입니다.”
김선동 위원장은 도봉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눈빛이 빛난다. 그는 어려운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힘은 공허한 외침이 아닌, 최근 2년간 원외위원장 신분으로 일을 해 낸 성과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 시절 유독 서울에서 도봉구간만 지상화로 결정되면서 지역 발전의 최대 암초로 여겨졌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도봉구간의 지하화는, 정권 교체 이후 김선동 위원장이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긴밀히 협의해 이뤄낸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다.
그는 “만약 그때 지상으로 결정되었다면 1호선 국철에 이어 GTX 구조물이 더해져 지역은 동서로 크게 갈라지고 도봉 구민의 오랜 염원인 국철 1호선의 지하화도 물 건너가게 될 뻔했다”라며 정말 도봉의 미래를 위해 결코 지상화는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원희룡 장관을 압박하며 설득해 냈던 운명의 순간을 회고하기도 했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3년간 ‘절대 불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북한산 고도제한 완화를 이끌어냈고, 15년간 표류하던‘우이-방학 경전철’사업에 큰 걸림돌이 될 뻔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보류 사태를 반 년 여의 노력 끝에 해결했다. 김선동 위원장의 뚝심으로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턴키방식의 해법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착수가 어려웠을 것이다.
김선동 위원장은 원외 당협위원장의 위치에 있었지만 지역의 미래를 위한 현안 해결에 누구보다 최 일선에 서 있었다. 끊임없이 지역 발전의 비전을 고민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부단히 뛰는 일꾼이 정치인 김선동이다.
■ 약자와의 동행, 그의 정치가 시작된 곳
김선동 위원장의 ‘결과 중심주의’는 단순히 개발과 성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정치적 뿌리는 오히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인 약자의 목소리에 닿아있다. 그는 ‘장애인의 보행권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신념 아래,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숙원 사업들을 해결해 낸 경험이 있다.
“22년간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도봉 경찰서의 엘리베이터 설치를 관철시켰을 때와 역 구조상 불가능하다던 도봉역과 방학역에 엘리베이터를 개통했을 때, 장애인 어르신들이 제 손을 잡고 고맙다며 감격해 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는 말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영역입니다.”
기상이변의 이상 폭우 속에서도 수해나 빈번했던 지하수 역류가 도봉에서 없어진 것도 지하에 대형 하수관을 묻는 사업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챙긴 땀의 결과다. 보이지 않는 땅속을 챙긴 일이었지만, 보여 지는 일보다 그가 마음속으로 뿌듯해하는 일이다.
김선동 위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예산을 증액하고, 와상 중증장애인(독립적으로 앉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장애인)의 생명권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꾸준히 약자와 동행해왔다. 최근 ‘제20회 서울시수어문화제’에서 농아인 권익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시농아인협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것 역시 이러한 진심이 지역사회에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일한 흔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현역 국회의원 시절 성사시켰던 도봉산 광륜사 건너편 산악안전교육원(총 사업비 281억 원) 공사도 올해 말 완공될 예정이다.
■ 깨어있는 구민, 정직한 일꾼이 만드는 도봉의 미래
“정치가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에만 몰두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지역 주민에게 돌아갑니다. 지금이야말로 일꾼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정치가 도봉에 해 준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도봉도 깨어나야 합니다. 깨어있는 구민과 정직한 일꾼이 함께할 때 도봉의 미래도 달라질 것입니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주거 환경을 혁신하고, 교육과 복지, 문화 인프라를 촘촘히 채워, 청년들이 돌아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활력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 등, 도봉에는 아직도 해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도봉발전에 관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 변치 않는 사랑으로 다시 도봉의 미래를 연다!
도봉구에서 태어나 도봉구가 고향이라는 도봉1동의 정 모(25세) 청년은 “친구들과 가끔 정치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지금도 김선동 위원장님이 현역 의원인줄 알고 있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원외임에도 지역을 부지런히 살피시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에 그렇게 각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선동 위원장님은 도봉발전에 정말 진심인 정치인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방학3동에서 50여년을 살고 있다는 김 아무개(73세) 어르신은 “진심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소외된 사람들을 살피는, 그야말로 내면이 꽉 찬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토록 한결 같을 수가 있겠어요. 주민을 대하는 모습이 지극해요. 당선돼도 일하고, 안 돼도 일하는 저런 정치인을 본적 있어요?”하면서 외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렇다. 김 아무개 어르신 말대로 당선되면 일하고, 낙선하면 떠나는 정치인이 진정한 지역의 일꾼일리 없다. 김선동 위원장은 20여 년의 세월 동안 낙선과 당선으로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세월을 보냈다. 혹자는 ‘여러 번 불의의 낙선을 겪으면서도 변치 않는 뚝심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평가도 일리는 있다. 묵묵히 도봉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현재 도봉구에서 비견할만한 대상이 여야를 통틀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다시 또, 늘 그래왔듯이 도봉의 ‘오래된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역과 민심을 살피고 있다. 그의 뚝심과 진심이, 조붓한 도봉의 미래를 어떻게 확장시켜나갈지 김선동 위원장에게 자성(磁性)처럼 지역 사회의 민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