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통한 사회적 기여를 자신의 소명이라고 말한 도봉구립예술단 신지연 예술감독.
▴예술을 통한 사회적 기여를 자신의 소명이라고 말한 도봉구립예술단 신지연 예술감독.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으로 더 잘 알려진 신지연 도봉구립예술단 총감독. 그는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가 주최한 ‘2023 대한민국 국가사회산업공헌 대상’에서 유수의 기업, 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클래식 대중화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화려한 유럽 무대를 뒤로하고 도봉구의 문화예술 행정가로 변신한 그녀. 무대 위 아티스트에서 지역 문화의 든든한 가교가 되기까지, 그의 여정은 언뜻 보면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예술을 통한 치유와 연결’이라는 단단한 소명이 일관되게 흐른다. 한 명의 예술가가 어떻게 자신의 철학을 지역 공동체 속으로 녹여내고, 도봉이라는 무대 위에서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작곡하고 있는지, 그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 독일의 디바, 절망의 순간에 도봉을 만나다

Q. 독일에서 팝페라 가수로 화려하게 데뷔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귀국해 도봉구와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독일은 제 음악 인생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2006년 팝페라 그룹 ‘Human Voice’로 데뷔해 카셀 시립음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베를린 필하모니 무대에 서는 등 10년간 꿈같은 시간을 보냈죠. 유럽 크루즈 전속 가수로 활동하며 영주권을 받을 기회도 있었지만, 공연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귀국했던 2010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때 운명처럼 도봉구를 만났습니다. 우연히 도봉구민회관에서 다문화가족을 위한 공연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관객분들이 제 노래뿐만 아니라, 당시 깁스한 저의 불편한 모습까지 따뜻하게 감싸주셨어요. 노래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그 진솔함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때 도봉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제가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다시 무대에 설 용기를 준 곳이 바로 도봉구입니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독일 카셀시립음대에서 갈고닦은 정통 클래식에 깊이 닿아있다. 하지만 그는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높은 문턱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페라의 깊이와 팝의 대중성을 결합한 팝페라를 선택한 것은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의 발현이었다.

■ ‘문화의 중심은 사람’… 예술가를 위한 실질적 지원을 외치다

Q. 도봉문화예술지원센터장부터 현재 총감독에 이르기까지, 줄곧 행정가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예술 철학이 궁금합니다.

“제 철학은 명확합니다. ‘문화의 중심은 예산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유학 시절 실용주의를 배웠지만, 도봉구에서는 사람끼리 부대끼며 나누는 ‘진정성’의 힘을 배웠습니다. 이 진정성이야말로 어떤 명품보다 세련된 도봉구만의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제 역할은 이 진정성을 바탕으로 지역 예술가들과 주민들을 잇는 ‘가교’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청년 예술가들이 더 이상 ‘열정페이’만으로 자신의 역량을 소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들의 생계를 위한 근본적인 지원 제도가 시급합니다. 그런 면에서 도봉구는 만화인마을, 평화문화진지 예술인 입주 지원 등 선도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실리적인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개인의 무대에서 펼치던 ‘예술을 통한 사회적 기여’라는 소명은, 도봉구 문화예술지원센터장이라는 더 넓은 무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경력의 전환이 아닌, 평생의 철학을 지역 공동체 안에서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 버스킹의 개척자에서 수상의 영광까지

Q. 도봉구에서 이룬 성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제가 이끄는 도봉구립여성합창단이 거제 전국합창대회에서, 소년소녀합창단이 철원 평화동요제에서 각각 수상하며 도봉구의 위상을 높였을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 가장 깊이 남아있는 기억은 창동역 앞에서 시작했던 ‘첫 버스킹’입니다. 당시 드림스타트 아동들과 음악 연습을 하던 공간을 갑자기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각오로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창동역으로 나가 공연을 시작했지요. 그것이 도봉구 거리 공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 음악을 배웠던 아이 중 한 명은 지금 당당한 거리예술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예술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최근 수상 소감에서도 그의 마음은 늘 지역 예술인들을 향해 있었다. 신지연 감독은 “문화예술로 살아가기 너무나 어렵고 힘든 시기다. 코로나로 침체된 지역예술인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열심히 뛰었다”고 말하며 이어 “‘포기하지 않고 가다보면 언젠가 꿈을 이룰 것’이라는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힘을 냈으면 좋겠다. 도봉구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한 해 동안 도봉극장을 빛내준 43팀 지역예술인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을 말씀해주십시오.

“음악은 나 좋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한때는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도봉구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압니다. 제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준 곳이 바로 도봉구입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더 많은 예술의 씨앗을 틔우고, 주민들의 삶이 문화로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유럽 무대를 호령하던 팝페라 디바에서, 이제는 지역 문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신지연 감독. 그녀의 진심 어린 열정이 ‘음악중심 문화도시 도봉’의 미래를 더욱 밝게 비추고 있다. 한편, 신지연 예술감독은 독일 카셀(Kassel) 시립음대 석사 졸업, 대한민국 국가사회산업공헌 대상 ‘클래식 대중화 부문 대상’ 수상, 도봉구립예술단 총감독, 도봉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백제예술대, 국제대, 신안산대, 대불대 외래교수로도 활동한 음악재원이다.

그녀가 지휘봉을 잡은 도봉구에서는 팝페라 무대와 동네 광장 사이의 경계가 아름답고 의미 있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섬세함으로 문화의 맥을 짚고, 예술가의 열정으로 지역주민의 마음을 보듬는 신지연 예술감독의 행보 하나하나가 곧 도봉 문화의 새로운 역사가 되고 있다. 김형순 기자 ks00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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