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해와 노원의 지명유래
먼저 필자의 고향 노원구(태어날 당시는 양주군 노해면)에 대해 언급하자. 현재 노원은 고려말부터 조선조까지 존재했던 노원역(蘆原驛) 그리고 임진난 중에 행해진 노원평(蘆原坪) 전투 현장을 지명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모두 노원에 존재했다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과거 역 주변에 있던 역참으로 인해 노원구 여기저기에 말 동상들이 설치되어 있고 심지어 마들의 마는 뽕나무과의 한해살이 풀인 마(麻, 삼)임에도 불구하고 말로 해석하여 마들 주변 가로등에 그를 적시하는 안내판이 늘어서 있다.
또한 임진란 중 의병들의 활약상을 기록한 ’고대일록‘에 ‘삼각산 노원평’이라고 즉 삼각산(북한산) 근처란 단서를 달았는데, 강북구 우이동과 인접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수락산 마들평야로 해석하여 거금을 들여 수락산 초입에 ‘노원평 전투 대첩비’를 건립했다.
고문서를 살피면 현 노원은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 시절 노원리(盧原里)로 등장하여 조선 중기 이후 노원면(蘆原面)으로 격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 존재했던 노원역을 현재의 노원으로 아직도 착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해(蘆海)에 대해 언급하자. 노해란 지명은 ‘노원’의 ‘노’와 지금의 도봉구 일대를 지칭하던 ‘해등촌’(海等村)의 ‘해’를 따서 지은 지명으로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다.
해등촌은 1656년 실학자 유형원이 편찬한 동국여지지 양주목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 기록에서는 한자로 海藤村(해등촌)이라 하여 ‘등’을 ‘등나무’를 의미하는 글자를 사용하는데 이는 ‘等’의 오기다.
여하튼 조선후기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해등촌이 해등면(海等面)으로 격상되는데 왜 지명에 바다를 의미하는 海(해)와 무리를 의미하는 等(등)이 들어가는지 의아하다. 노원의 경우는 지난 시절 중계본동과 상계동에 갈대가 무성했기에 지명이 그리 정해졌는데 무슨 이유로 해등이란 지명이 생겨났을까.
아마도 海(해)가 또 다른 의미, 즉 ‘물산이 풍부하다’라는 의미를 지녔기에 굳이 그를 지명에 삽입한 듯 보인다. 노원도 그러하지만 현 도봉 지역도 지난 시절에는 그야말로 사람들이 살기에 그만인 장소로 추정된다.
뒤로는 삼각산과 도봉산이 그리고 앞으로는 중량천(고문서를 살피면 지명은 ‘중랑’이 하천명은 ‘중량’으로 드러남) 사이에 드넓게 펼쳐진 평야 지대로, 거기에 더하여 경흥대로가 존재하여 사람 살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나 생각든다.
그런데 노원도 그러하지만 도봉구에서도 노해란 지명을 애용하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두 지역이 노해란 지명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부디 이러한 사실을 알기 바라는 차원에서 짤막하게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