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규 김포문화원장 - 수필/기고 -

[서울인뉴스] 묘비명

                       ▲ 박윤규 김포문화원장.
                       ▲ 박윤규 김포문화원장.

  올해 추석 전 대한민국의 개그계 대부 코미디언 전유성이 세상과 인연을 끊으려 할 즈음 개그계 선·후배 친구들이 병문안하던 자리에서 한 친구가 “묘비명을 할거냐?” 무슨 말을 남기고 싶냐고 물었다. 전유성은 이렇게 응대했다. “웃지마, 너도 곧 와” 묘비명 할 때 명자는 성명할 때 쓰는 명(名)이 아니라 새길 명(銘)을 쓴다. 고인이 평생 잘 쓰던 외마디 작별인사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가·외교관·과학자·저술가를 지낸 벤저민 프랭클린은 죽기 전 젊었을 때 묘비명을 정하고 자주 읽으며 가훈처럼 생활화했다고 한다. 나는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 덕이나 베풀자, 마음을 정하였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묘비명은 “여기 벌레먹이로 눕다”였다.

땅속에 묻히면 벌레 먹이가 되는 건 사실 아닌가? 익명의 이탈리아 묘비명이 눈길을 끈다. 내용은 “다음은 너야”이다. 영어로 “You are the next”이다.

영국의 코미디언 스파이크 밀리건은 대화법의 묘비명을 새겼는데, “말했지, 나 아팠다고”였다. 미국의 성우였던 멜 블랭크는 간단한 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이었다. 인생이란 살아서 숨 쉴 때까지다. 야단치고 욕하고 싸울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그런 뜻이 아닐까?

아일랜드의 극작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는 극작가답게 이렇게 썼다. “어영부영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사실 우리 인생은 이랬다저랬다 한다가 종말이 온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묘비 세우지 말라. 작은 돌멩이 하나로 표시하라” 하였다.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무명의 묘비명을 보자. “나 여기 무덤에 없다.”, “일어나서 응대 못 해 미안하다”, “신세를 못 갚고 가네”, “여기 땅속은 너무 깜깜하다”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혁신을 말한다. 얼마 전 여당의 실세 한 권력자의 딸 청첩장이 화제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어이없다”였다.

청첩장 내용의 주된 글자는 “축의금 보낼 사람이 계좌로”였다. 만약 못 보낼 사람을 위해 외상도 된다는 식의 카드 결제 링크까지 적혀있었다.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이 정치를 잘한 실적을 출판기념회 형식을 빌려 마구잡이식 청첩장을 남발하고 있다.

그런데 서민들로부터 비웃음을 왜 자아내고 있을까? 필자는 묘비명에 이런 글귀가 안 나올까? 미소 지어본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돈 좀 모았네” 명 묘비가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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