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가운의 흰색과 문화의 다채로운 색은 언뜻 멀어 보이지만, 그 중심에 ‘사람’과 ‘치유’라는 가치를 놓는 순간, 둘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약으로 몸의 병을 다스리던 약사가, 이제는 문화로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도봉문화원의 수장을 맡고 있는 최귀옥 원장의 이야기다.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사람을 향했고, 그의 시선은 늘 지역의 건강한 내일을 향하고 있었다. 도봉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봉문화원에서, 그의 깊이 있는 철학과 멈추지 않는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약국, 동네 사랑방에서 지역 보건의 최전선까지
“약국은 단순히 약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잠시 쉬어가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고, 아이 엄마들이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는 상담소이며, 주민들의 건강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피는 최전선의 보건소입니다. 그 작은 공간에서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저는 ‘건강’이란 것이 단순히 아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평안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최귀옥 원장의 뿌리는 ‘약사’다. 그는 과거 도봉·강북구 약사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는 약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약품 안전 사용 교육’, ‘마약 및 약물 오남용 예방 캠페인’ 등을 주도하며 지역 보건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공적 마스크 공급의 최일선에서 혼란을 막고, 재택 치료자들을 위한 의약품 전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지역사회의 위기 극복에 앞장서며 약사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 그의 이러한 헌신은 단순한 직업적 의무를 넘어, 지역 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문화, 마음을 치유하고 지역의 자부심을 세우다
오랜 기간 지역 보건을 위해 힘써온 최귀옥 원장이 도봉문화원장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치유의 확장’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몸의 건강보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건강과 정신적 풍요입니다. 한 지역이 진정으로 건강해지려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살아 숨 쉬어야 합니다. 도봉구는 도봉산과 우이천 같은 천혜의 자연뿐만 아니라, 도봉서원과 정의공주묘, 김수영 문학관, 간송옛집 등 수많은 역사문화자원을 품고 있는 보물 같은 곳입니다. 도봉문화원은 이 보물들을 잘 닦고 엮어서, 구민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게 하고, ‘문화로 행복한 도봉’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봉문화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도봉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도봉서원’과 ‘방학동 은행나무’ 등 지역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역사 탐방 및 교육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했다. 또한, ‘도봉 역사문화길 조성’, ‘도봉 옛 사진 공모전’ 등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지역의 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주체가 되도록 이끌었다.
나아가 그는 문화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도 힘썼다. 서예, 민화, 전통무용 등 어르신들을 위한 전통문화 강좌부터,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 지원,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도봉한글잔치’, ‘도봉옛길문화제’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모든 구민이 일상 속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다채로운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 ‘사람’과 ‘연결’, 그리고 ‘미래’를 향한 약속
“문화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며, 과거와 현재가 소통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문화가 됩니다. 약사 시절, 약을 매개로 사람과 소통했다면, 이제는 문화를 매개로 도봉의 모든 세대를 하나로 잇는 ‘따뜻한 연결자’가 되고 싶습니다.”
최귀옥 원장은 인터뷰 내내 ‘사람’과 ‘연결’을 강조했다. 그의 비전은 도봉문화원을 단순히 문화를 전시하고 가르치는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지역 공동체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약사로서 주민들의 건강을 돌봤던 그 마음, 그 초심 그대로 이제는 도봉의 문화와 정신을 돌보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가 사는 동네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고, 청년들이 문화 속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며, 어르신들이 풍요로운 여가를 누리는 ‘문화도시 도봉’. 그것이 제가 꿈꾸는 도봉의 내일입니다. 그 길을 구민 여러분과 함께 걷겠습니다.”
약사의 섬세함으로 문화의 맥을 짚고, 이웃의 마음을 보듬는 최귀옥 원장. 그의 따뜻한 카리스마와 지치지 않는 열정이, 도봉의 문화 지도를 어떻게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채워나갈지,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곧 도봉 문화의 새로운 역사가 되고 있다.
한편, 최귀옥 원장은 도봉⋅강북구 약사회 회장, 도봉구 명예구청장(문화체육 분야)을 역임하고, 문화와 복지를 위한 ‘지음’ 대표,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보건학 박사)로 활동하며, 2022년 7월부터 제8대 도봉문화원장을 맡아 도봉의 문화부흥을 이끌고 있다. 김형순 기자 ks00777@naver.com